글/ 곽혜란 (서울옥션)
‘방’이란 어느 곳보다도 지극히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공간이다. 비밀의 공간일수록 그곳에 놓여 있는 사물들은 그 풍경과 공간 속에 있는 이의 감성까지 전달한다. 사물은 단지 사물에 그치지 않고 사용한 이의 흔적을 남긴다. 미술가 정지현은 베개, 의자, 서랍, 선인장 등 자신의 방에서 보이는 일상의 사물들로 생경한 풍경을 만들어 간다. 이는‘작가의 마음’이라는 방 속의 은밀한 감성들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경계가 흐릿한 뿌연 서랍의 형상과 그 속에 들어 있는 뽀얀 꽃가루, 유리구슬, 꽃잎 등은 마치 초현실주의 작품에서 봄직한 데페이즈망(dapaysement)기법을 사용하여 표현된다. ‘데페이즈망’이란 어떤 물건을 일상적인 환경에서 이질적인 환경으로 옮겨 그 물건의 실용적인 성격을 배제하여 물체끼리 기이한 만남을 표출시키는 기법을 말한다. 초현실주의 작가인 르네 마그리트나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들이 데페이즈망으로 그린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지현의 데페이즈망은 어떠한가? 그녀만의 독특한 하얗고 뿌연 아크릴 물감의 느낌들은 여리고 차가운 여성의 이미지를, 서랍 안에 들어 있는 사물들은 그 안에서 잃어버리기 쉬운 힘을 불어넣는다. 뿌연 서랍은 잘 만들어진 캔버스 바탕에 꽃가루 또는 색색의 구슬을 담아내어 고요함을 깨고 비로소 한 화면이 완성된다. 그 화면에서 그녀의 방안은 낯선 공간으로 변화하는 듯하다. 떨어져 나온 서랍은 또 다른 공간이 되고, 그 공간에는 또 다른 낯선 사물이 담겨 있다. 익숙한 나의 방에서 표출된 이미지들의 조합은 낯섦보다 더 낯선 이미지들로 이곳과는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솜사탕 같이 부드럽고 섬세한 감성, 봄 햇살의 나른함과 몽롱함, 때때로 자극하는 색감과 소재들은 작가 특유의 예민한 감성이 배어난다. 차갑고 슬프고 여린 이 그림들은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주체로서의 여성과 사회적 압력과의 미묘한 갈등 관계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과연 작가가 여성이 아닌 남성이었다면 이러한 감성을 표현할 수 있었을까? 작가는 대부분 자신이 느끼고 경험한 것 등을 토대로 작업을 한다. 작가의 감성을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니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렇기에 그 작가만이 표현할 수 있는 아이덴티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약해 보이지만 강한, 슬퍼 보이지만 밝게 속삭이는 정지현의 서랍을 꺼내어 익숙한 나의 방에 낯선 풍경 하나를 걸어봄이 어떨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