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윤섭 (미술평론가, 한국미술연구소 소장)
정지현의 그림은 신기루 같은 감각의 환영을 보여준다. 그의 풍경은 시공간의 경계에 놓인 ‘표백된 사막’처럼 무감각하다. 마치 진공된 상태로 어떤 움직임도 소리를 낼 수 없고, 작은 생명의 온기마저 감지할 수 없는 세상 같다. 이성적인 직관력으로 뭔가 찾아보려 애써도 소용없다. 화면 전체를 뒤덮은 희뿌연 실루엣의 막에 가로막혀 아무런 느낌을 가질 수 없다. 환각의 잠에 막 빠져들 즈음, 날카로운 촉수에 뜨끔 찔려 깨어나듯 지각을 되찾는다. 현실로 깨운 것은 선인장 가시이다. 그것들은 온몸에 핏빛 가시를 둘렀다. 좀 전에 흡혈을 마친 것처럼 촉수 끝에서 뿌리까지 선홍빛 핏줄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환영의 세계와 현실을 잇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그 핏빛인 셈이다.
정지현의 최근 ‘사막정원’ 시리즈에 등장하는 식물은 하나같이 창백하다. 가시 끝자락에 핏방울을 붙였거나, 식물 표면에 검버섯처럼 핀 얼룩과 빨간 곰팡이 정도가 고작이다.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현대인의 불안감, 작가 개인의 불안정한 심리상태, 사회적 억압으로부터의 무기력함...비록 화려한 치장으로 새와 곤충을 유혹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만의 방식으로 그 정원에 봄을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핏빛 가시를 머금은 꽃들은 처량한 아름다운 향기를 뿜고 있을지라도, 그 이면엔 이미 따뜻한 생명의 온기가 피어나기 시작한다.
Jeong's art is like a mysterious mirage. The landscape is similar to an insensible, bleached desert located in between time and space. It is a vacuum of space, absent of any movement or sound, not even a tiny creature breathes. The surface is veiled under a foggy silhouette, numbing any clear sensation. However, something sharp penetrates into reality. The cactus spines, with its tips dipped bright red, are as if they just finished sucking on some creature's blood. This red connects the world of the phantasmal and the real.
All of Jeong's plants are pale. The only color is this hint of red. What is the artist trying to say? The anxiety and psychological instability of the modern man, fatigue from social oppression...Although Jeong's plants may not allure birds and bees with fancy adornment, there definitely is a welcoming of warm spring in her own quiet way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