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종근 (미술평론가, 숙명여대 겸임교수, 옥션앤콜렉터 발행인)
최근 주목 받는 젊은 화가 중에는 여류작가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그들의 작업은 우리가 이전에는 볼 수 없었을 정도로 신선하고 민감하다. 삼십 대 중반의 정지현 역시 그런 대표 작가 가운데 한 명이다. 2000년에 홍익대학교 회화과와 동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 2008년에 동 대학원 미술학과 박사과정을 마친 그는 1999년부터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해, 두아트 갤러리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서울과 상하이 등에서 작품전을 가졌고 중앙미술대전선정 작가로 입상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이런 30대 여류 작가들의 공통된 특징은 대다수가 외부의 세계를 묘사하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치밀하게 드러낸다는 점이다. 정지현의 초기작품은 그런 것 같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그러한 열정과 시놉시스를 담고 있다.
촉각화를 시각화하는 공감각적 표현방식
그는 초기에 알과 물고기 그리고 소파나 가구 등의 대상을 다루어 오다 근래에는 집중적으로 가시가 송송 나 있는 선인장이나 변종 된 꽃 모양을 그린다. 정말 눈이 온 듯 하얀 바탕의 화폭에 드러난 형상들은 그대로 그가 이야기하는 “사막정원”이다. 그러나 의외로 전시 제목은 ‘얼룩지다 스며들다’, ‘피어나다’, ‘사막의 방’이란 제목아래 가시와 곰팡이가 뒤덮인 작품들 투성이다. 그는 왜 이런 작품을 하는 것일까? 그 자신이 밝히고 있듯이 그는 “어떤 사물에 대한 ‘이끌림’이 이 영감의 발단”이라고 말한다. 길을 가다가 선인장을 봤을 때도 이끌렸다는 것이다. 보통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형태를 보고 시각적으로 끌려 작업을 시작하는데, 그는 공감각적인 것에 매료 당한 것이다. 시각뿐 아니라 촉각적으로, 때론 후각적으로 반응한다는 정지현을 촉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형식과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그의 표현은 실제 보면 훨씬 더 시각적이다.
맑고 투명한 이미지 속에 숨겨진 불안과 상처
하얗게 덮은 듯 칠해진 맑은 공간에 가시가 송송 난 선인장, 붉은 곰팡이가 핀 낡은 의자, 그리고 뾰족한 선인장의, 그리고 유혹적이고 중독적인 꽃, 이것들은 아름답지만 독성을 지닌 것처럼 자극적이고 위험해 보인다. 마치 아름다움으로 위장한 독버섯처럼 말이다.
정지현은 이러한 표현의 내면의 욕망이 곧 “영원 속에서 안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간은 완전히 사라져 이러한 안식은 영원할 것만 같다”고 고백한다. 정지현의 얇게 비친 듯이 맑고 투명한 백색 축제의 작품 속에는 작가의 불가피한 욕망, 그리고 불안과 상처 등 작가 내면의 심리가 드리워져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매우 섬세하고 부드럽고 귀해 보이지만 불안한 감성의 표출로 읽혀진다. 또한 ‘사막의 봄’ 처럼 그의 집들은 가운데 핀 선인장과 그 주위를 물속처럼 헤엄치며 놀고 있는 장식용 금붕어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한 상상의 공간이자 인공으로 조합된 공간이다.
오브제를 통해 표현하는 작가의 내면을 표현하는 오브제들
왜 그는 <사막의 꽃>에서 원래 존재하는 선인장을 그리지 않고 활짝 개화한 선인장에 유혹적이고 중독적인 빨간 가시들을 달아 놓았을까? 작가는 “각 대상마다 가지고 있는 상처나 기억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온 것”이라며 순간순간 그에게 다가오는 모티브를 이용해 작업한 것이라고 말한다. 바로 사막에 외롭게 핀 선인장 속에 기억 속의 상처나 아픈 감성을 이입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정지현의 작품을 읽는 데 있어, ‘알레고리’니, ‘우의’니 ‘풍자’니 하는 말보다 작가의 선인장에 대한 감정이입이 더 편하게 읽혀진다. 2003년 첫 개인전에 발표한 <낯선 공간속의 안식>이후 보여주는 일년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오브제들이 그것을 잘 말해준다. 사실 이러한 오브제들은 사물자체로는 어떠한 알레고리도 지니지 않는다. 알, 물고기, 베개, 의자, 보석, 선인장, 그 밖의 많은 회화적 오브제는 오히려 작가의 감성을, 내면을 전달하기 위한 감정이입의 대상이 아닐까?
가시와 곰팡이, 그만의 저항방식
물론 그는 일부의 작품들에서 평론가들이 해석하듯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지옥의 여왕 페르세포네(Persephone)를 등장시켜 그녀가 거처하는 비밀의 방이자 가상의 방을 재현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시각적 이미지의 재현일 뿐이지 진실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작가가 “내가 그리고 있는 것들이 영원히 안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사실 허구다. 다다를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노스탤지어일지 모른다.”고 했던 독백은 진실하다. 붉은 가시가 돋고 곰팡이가 핀다는 건 시간을 깨트려서 마침내는 영원의 실체를 없애버리려는 거다. 그렇다. 작가는 그러한 표현을 통해서 감정을 이입하기도 하고 그러한 관념과 통속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그가 가시와 곰팡이를 그리는 것은 그래서 시간에 대한 망각이자 그만의 저항 방식이다.
이어지는 비현실적 상상의 퍼레이드
그의 이런 내적인 욕망이나 필연의 표출에서 그는 촉각적이고 청각적이고 시각적인 감성을 보여준다. 그것을 그는 복수성이라고 말한다.
“복수성은 뭉뚱그려진 무엇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나는 혼재된 시공간을 넘나들며 감정의 틈새를 채우지 않을 수 없다. 심리적이고 신경증적인 분열감마저 느낀다. 그 무엇도 될 수 없는 중간자적 위치에서 나는 혼란에 빠지고 균열과 틈새에서 방황한다.”
정지현의 그림은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불편한 표정과 감정을 자아내게 한다. 탐미적이지 않고 오히려 구토적이며 초현실적이라 할 만큼 그는 비합리적인 조건과 상황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대작 <사막의 봄>(2008)처럼 쭉 뻗은 선인장들의 다양한 집합 그러한 구성이나 배열자체도 논리적이지 않다. 거기에 그는 탈색된 듯한 배경과 형상으로 가시나 곰팡이의 이질성을 결합시킨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상상의 퍼레이드는 <사막의 꽃>이나 <사막의 정원>같은 역설로 정지현의 작품의 전편에 흐른다.
다분히 환영적인 인상을 강하게 풍기는 주요 작품의 모티브인 선인장은 그러고 보면 그러한 기억을 담아내고자 동원된 하나의 그릇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즉 이미지의 허상처럼 허구라는 것이나. 그러한 것을 가장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윤기 나는 가구의 반질반질한 표면과의 조합이자 결합이다. 부조합을 조합으로 만들어내는 힘을 지닌, 그리고 기억과 상처를 끌어내어 허구를 말하기 위해 진실을 배반하는 표정을 민감하게 그려내는 반역의 작가, 그것이 정지현의 실체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