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선영 (미술평론가)
정지현의 작품은 자신의 미감을 표현하기에 알맞은 한정된 소재를 극도로 정제된 조형언어로 거르고 있다는 점에서, 모더니즘이라는 고급문화의 전통에 속한다. 소파나 선인장 같이 별로 주목되지 않는 일상적 사물들은 부드러운 피부와 털을 가진 것처럼 변모한다. 선인장의 두툼한 육질과 가느다란 가시는 색감, 질감, 그리고 형태의 대조로 시각적 활기가 부여된다. 프로이트가 ‘보는 것이란 궁극적으로 만지는 것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다’라고 했듯이, 그것은 단순히 시각 성을 넘어서 촉각 성으로 확장된다. 정지현의 주요 소재인 선인장의 핏빛 가시와 몸을 연상시키는 소파와 꽃에서 방출되는 듯한 붉은 구슬은 물활론적인 생기를 부여하는 조형적 장치이다. 조형적 장치의 밀도와 세련됨은 사물의 우연성과 상대성을 필연성과 절대성으로 위치 지운다. 이러한 도약의 매개자라고 할 수 있는 주체는 물체의 명료성 뒤에 숨는다.
순수한 형태로 고양된 일상적 사물들은 구체적인 상황과 단절된 자체의 명료성을 획득한다. 대상들은 시각적 실험실에 놓여 있는 시료와도 같은 성격을 가진다. 가령 관객은 정지현이 그린 식물이나 가구가 놓인 맥락이나, 그것의 소유주가 누구인지 쉽게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사물과 인간이 상호반영 되었던 이전의 인간중심주의적 시선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사물들은 정밀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거기에는 인간적인 이야기가 전개될 실체감이 축적되어 있지 않다. 사물들은 탈색되어 있고 그 위에 리드미컬한 시각적 악센트만 남아있다. 그리기라는 순수한 여정을 통해 도달하는 사물들은 또 다른 체계의 그물망에 사로잡혀 있다. 그것은 언어의 감옥이다. 그것은 주체의 유폐라는 현대적 상황에 상응한다. 이런 맥락에서 ‘감옥 안에서의 세계의 재창조’는 저주이자 축복이기도 한 예술의 자율성을 잘 설명하는 말이다. |